20120722 대양누가병원 화재 Lilongwe, Malawi

여러 일이 있었던 주말이었습니다. 일요일의 계획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부열 선생님을 배웅하고 느긋하게 다윗, 사라 언니와 올드 마켓(Old Market)에 가서 구제품 및 기타 필요한 물품을 쇼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0시쯤 선생님이 가신 후, 까넹고(Kanengo)에 데려다 준 동훈 오빠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미니버스를 타고 탈탈탈탈 타운을 향해 갔습니다. 



... 이글루, 이렇게 작게 해 놓으면 두 사진을 한 줄로 나란히 배치해 줄 줄 알았더니. 아니군요.


미니버스는 지금까지 제가 타 본 것 중에 가장 험한 운전사 아저씨께서 몰고 계셨습니다. 셋이 다같이 엉덩이가 들렸다 놓였다 들렸다 놓였다를 반복, 숍라이트(Shoprite)까지 갔습니다. 숍라이트와 게임(Game)사이로 난 길을 따라 교통체증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행선지는 그 다음 곳이므로 조바심 내지 않고 앉아 있었더니 어느덧 National Bank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직진하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직접 가보지는 않았고 전해 듣기만 한 길이라 약간 긴장하고 있었는데, 쭉 roundabout이 하나 나올 때까지 가더니 (여담이지만 여기에 말라위에서 유일하게 본 전광판이 하나 있습니다) 왼쪽으로 진행합니다.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다리가 하나 나오고 (출퇴근 시간에는 많이 막힙니다) 다리 왼편으로 엄청나게 큰,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같은 Old Market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니버스들은 경찰이 많은 이 도로에서 직접 사람을 내려주지는 않고, 우회전 한 후 한 3-4분 더 달려 미니버스들이 잔뜩 주차한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줍니다. 



숍라이트 뒤편의 재래 시장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물론 파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요. 시장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수에 입이 벌어졌습니다. 복작대는 곳에서 핸드폰을 꺼내면 분실할까봐 사람들 사진은 못 찍고, 좀 한가한 구석에서 소심하게 우리끼리 찍은 사진들입니다:


다윗, 사라언니. 다윗이가 산 빨간 후드가 보여요.



Old Market의 가게들은 나무로 파티션을 해 놓고 상점별로 특색도 있고 (여성복, 아동복, 란제리 등등) 구제품 시장이라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셋 다 피곤해서 오래오래 옷을 고를 여유는 없었고, 보이는 대로 괜찮은 가격이면 흥정해서 구입했습니다. 저는 까만 얇은 원피스에 블라우스 하나 (650MK + 350MK) 그리고 각종 치텐지(chitenje)를 마구 구입했고 주예 언니에게 필요해 보이는 옷장 봉에 걸어 놓을 3단 소품 케이스 (흥정해서 1700MK), 이어폰을 잃어버려서 괴로워하는 재우 오빠를 위한 이어폰 (450MK)까지 샀습니다. 이어폰은 두 쪽의 소리가 다 들리는 것을 샀건만, 줄이 너무 짧아서 별 소용이 없었다는 뒷이야기가 ...

다윗이는 추운 밤을 위한 따뜻한 빨간색, 하얀색 후드 두 개, 사라 언니는 얇은 검정 블라우스에 청회색 배낭을 하나 샀습니다.




그렇게 점심까지 사 먹고 햄볶하게 단지 내로 귀가했건만 ...

이런 사태가...



건기에 말라위에는 불이 많이 납니다. 아니, 난다는 표현보단 낸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불을 내곤 하거든요. 이유를 물어보니 쥐를 잡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퇴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서...) 이전에는 건기에 그렇게 함부로 들판에 불을 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마른 풀이 많아도 한국과 풀 종류가 좀 다른지 신기하게도 불이 번지지를 않더라구요. 그 걸 몇 달 간 보고나니 아침에 병원 건너편 들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연기와 함께 일고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불다 보니 불이 급격하게 병원 옆길 텃밭을 돌아 우리가 늘상 다니는 길까지 번졌습니다. 길을 따라 타다 보면 스태프하우스까지 오겠다는 우려에 의무소방 출신인 동훈오빠가 불길을 잡으러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오다가 우리를 만났어요. 당장 쇼핑한 것을 집에다가 내던져 놓고, 다윗이가 던져주는 마스크를 쓰고 물통에 물을 담아 뛰쳐내려왔습니다. 



불은 얌전히 화덕 같은 곳에서 타고 있으면 괜찮지만,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재앙이더라구요. 불이 한창 활활 타오를 때의 사진은 (당연히) 없고, 물병 및 호스를 연결해서 한참을 왔다갔다하여 불이 좀 진정되고 난 후에 사진은 조금 찍었습니다. 

이번 진압에서 가장 수고한 것은 삼기 선생님, 택수 오빠, 준영이인 것 같아요. 이곳저곳 퍼진 불씨까지 행여나 다시 바람이 일면 큰불로 번질까 하여 들판 이곳저곳을 긁히고 데이며 끄러 다니다 보니 모두 기진맥진했습니다. 언제나 온유하신 삼기 선생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롭게 불과 싸우셨고, 택수 오빠는 곡괭이로 속불이 있는지 헤집으며 꼼꼼히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준영이는 언제나 그렇지만 그 활기찬 모습 그대로 열심히 진화에 힘을 보탰구요. 얼마나 예뻐보이는지.



택수 오빠의 유일한 운동화는 아주 망가졌고, 준영이는 재에 발을 데었으며, 저는 급하게 반바지를 입고 나오느라 풀과 관목에 이곳저곳이 긁히고 베었습니다. 아, 모두들 일일 소방관 체험은 충분히 한 것 같아요. 저 위에 동훈 오빠가 들고 있는 소화기는 우리 오피스에 있던, 분말 소화기보다 좋다는 할로겐 소화기입니다. 그런 것이 있는 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다들 옷이 그을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진 그날 입은 옷은 다 버려야 할 모양입니다.




병원 뒤안길에 바나나 나무들이 좀 있었는데 홀랑 타버렸습니다. 요 며칠 새 남은 부분들이 잿빛으로 시들어가는 것을 보면 좀 맘이 아파요.




증거 사진... 그을린 바나나 ㅜ.ㅜ. 바닥에는 엉망으로 타버린 흔적들이 가득하네요. 제 신발과 바지는 ㅂㅂ...





김수지 교수님은 간호대 학생들을 동원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기보단, 일부 적극적으로 불 끄기에 뛰어든 손에 꼽을 만한 간호대학 남학생들을 제외하고 손 놓고 있는 간호대 학생들을 꾸짖어 물통을 채우고 나르게 하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좀 진정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는 그 날 화가 많이 났습니다. 불은 현지 교회에 의대 건축 현장 그리고 간호대 뒤편 및 스태프하우스 근처까지 번졌어요. 동훈 오빠에 따르면 그 정도 면적이면 소방차 여럿 동원되었을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뛰어든 총 진압 시간은 4-5시간이었습니다.

불이 간호대 학생들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 학생들, 불 끄는 것을 좀 도와달라고 하자 깔깔 비웃던 학생들에게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특히 여학생들이 아주 심했습니다. 손 놓고 있다가 다 끝나고 나니 걸으면 10분 거리인 간호대까지 차로 태워달라고 한다던가, 김수지 교수님께 우리가 수고했으니 환타를 전체에게 사 달라고 한다던가. 

딱 때려주고 싶더라구요. 



이 나라에서는 "You, stupid!"라는 말 한 마디만 해도 인종차별로 고소당해 추방당할 수 있기에 자제했지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얼마나 미워보이는지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아, 하지만 개발 분야에 있는 우리가 '책임감'까지 키워줘야 한다면 그것은 또 오지랖이 아닐까, 합니다만. 요즘 스탭 교육에 힘쓰면서 열심히 엑셀을 공부하는 우리 스탭들이 너무 멋져보이던 생각과 겹쳐, 제가 다시 개발 현장에 온다면 어떤 사업을 하건 간에 굳이 책임감이나 참여 의지가 없는 사람까지 끌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정한 이야기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왜요?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해 줄 이유도 강제할 이유도 없다고, 그렇게 20대 초반의 설익은 개발에 대한 생각이 굳어져갑니다.




들판에서 불이 타든, 제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든, 말라위 하늘의 초생달은 눈썹만큼 얇고 예쁘게 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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